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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과 약

Roi du chocolat 2023. 9. 12. 19:37

초콜릿과 약

 

19세기까지 초콜릿은 그 특성에 대해 여러가지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찬양을 받기도 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당시 많은 의사들과 영양사들에게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었으며, 식품으로 미식가들의 선호를 받는 것과 더불어 그 영양학적 특성이 큰 관심이 되었습니다.

벨기에 Ovidias 캔 초콜릿 (출처 : https://www.ovidias.com/en-be/chocolate/fondante#tab-1)

1. 초콜릿에 대한 긍정과 부정

과거 초콜릿이 등장하고 많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초콜릿은 포장되고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의학자들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콜릿을 권장하며 기적의 치료물질로 여겼습니다.

 

마야인들이 카카오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4세기 초부터 초콜릿은 어떠한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의 주술사들은 카카오를 자극제나 진정제로 처방했었고, 전사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음료로 마셨습니다. 카카오 버터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아즈텍인들은 설사를 할경우 무덤에서 조상들의 유골을 발굴해 그 뼈가루에 카카오 음료를 섞어 마실 것을 권장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정복자들도 카카오의 치료 특성을 알고 있었고, 스페인 여행자는 카카오빈으로 위장과 독감에 좋다는 연고를 만들었다는 정보전달을 본국에 한 기록도 있습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과학계와 의학계에서도 새로운 초콜릿에 대한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았고 의학이 초기 단계였던 16세기에는 뜨거운 기질과 차가운 기질의 원리에 대한 탐구와 이러한 두 기질의 불균형이 많은 질병을 일이킨다는 신체 에너지에 기초한 많은 이론들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인들은 초콜릿이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였고 따라서 뜨거운 향신료를 곁들여 뜨겁게 마시며 초콜릿의 차가운 성질을 중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이에 아즈텍인들이 어떻게 초콜릿을 가열하지 않고 차갑게 마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7세기에 초콜릿에 많은 유익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식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초콜릿의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 의학계에서는 1661년 초콜릿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프랑스인 법률가이자 미식가인 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사망 2달전인 1825년 출간된 그의 저서 'Physiologie du goût'(미각 생리학)에서 초콜릿의 유용성에 대해 다음 처럼 기술하였습니다.  " 초콜릿은 고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 사람들, 연설 및 변호사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하고 특히 여행자들에게 매우 적합합니다. 위장이 약한 사람들에게 좋고 만성질환과 유문(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근육조직) 질환자들을 위해 효과적입니다." Brillat-Savarin과 동시대 사람들 중 일부는 초콜릿이 결핵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을 또한 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초콜릿이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듯 해 보여서, 항우울제로써의 장점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듯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콜릿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부정적인 평가를 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궁정 의사는 초콜릿은 뜨거운 성질을 갖고 있어 뜨거운 성질의 약을 첨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선언하고 그의 동료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초콜릿의 부작용으로 어린이들이 끊임없는 수다를 떨고, 불면증과 과민성 및 과잉 행동을 일으킨다며 초콜릿에 함유된 카페인의 효과를 분명하게 알아차렸습니다. 프랑스인들의 경우 초콜릿이 흥분을 일으키고 복부팽창과 변비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며 짧은 기간이나마 초콜릿 음용을 멀리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초콜릿의 의약적 그리고 영양학적 이점이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19세기 초 약장수들은 의학계가 초콜릿을 지지한다는 점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장 초콜릿, 기관지 초콜릿등의 다양한 형태의 '약용 초콜릿'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초콜릿은 병원, 요양원, 군대 및 다양한 기관에서 승인되어 식품보다는 일종의 약으로 쇼콜라티에가 아닌 약사나 의사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2. 비너스의 음식

초콜릿에 대해 ' 비너스의 음식' 이라고 용어 붙인이는 비엔나의 의사 Johann Michael Haider였습니다. 초콜릿이 매우 매력적이며 작극적인 그리고 설탕을 첨가하기 시작하여 달콤함이 강조되기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매우 낭만적인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초콜릿에 대한 이러한 용어는 당시 17,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매우 적합해 보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카카오 나무에서 부와 힘 그리고 성적능력의 부여를 보았고 초콜릿이 욕망을 일깨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즈텍의 황제 Moctezuma는 그의 할렘에 들어가기 전에 초콜릿음료를 마셨습니다. 이러한 음료가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가 첨가되어 음용되어 스페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음에도 초콜릿의 특수성과 레시피의 변화롤 유럽에 퍼졌고 초기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초콜릿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경건한 장소에서의 사용 금지를 요청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도 초콜릿의 최음제 특성이 있다고 그 주장을 지지하였고 18세기에도 이러한 특성이 있고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뒤이어 19세기 내내 유지되었습니다. 특히 카사노바(Giacomo Girolami Casanova)는 샴페인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했고,  뒤 바리부인(Madame Du Barry)은 그녀의 연인들에게 초콜릿음료를 마시게 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초콜릿은 달콤한 사랑을 위한 매혹적인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연인들을 위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